서태지 데뷔 전 이야기 [KPOP STORY]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이자 중심인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하기 전에 락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다. 하지만 서태지가 어떻게 시나위에 들어가게 되었고, 어쩌다가 한 앨범만에 그만두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

서태지_STORY_데뷔전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이자 중심인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하기 전에 락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다. 하지만 서태지가 어떻게 시나위에 들어가게 되었고, 어쩌다가 한 앨범만에 그만두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밴드 생활을 시작하고 그만두게 된 서태지가 대한민국 최고의 댄스 가수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서태지의 밴드 시절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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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어린 시절 [1972년 ~ 1988년]

서태지의 할아버지 정희석씨는 연대 음대 학장을 지냈으며, 국내에 최초의 오케스트라를 만든 음악가였고 아버지는 옷에 상표(라벨)를 제작하는 중소기업을 운영, 좋을 땐 좋고, 힘들 땐 힘든 평범한 집안이었다. 어머니가 해를 삼키는 태몽을 꾼 뒤 태어난 것이 서태지였는데, 어렸을 적 문구점에서 여러차례 장난감을 훔치다가 걸린 적이 있다(“울트라맨이야” MV에서 해당 상황을 재연한 장면이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조립을 잘해서 모형비행기 대회에서 열차례 이상 우승을 한 서태지의 재능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은 것으로, 라벨 제작 기계도 직접 특허로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끼를 이어받아서 설계사가 되어 건물을 짓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는데, 서태지는 공부도 잘해 반에서 5등안에는 늘 들었다고 하며 그런 서태지의 초등학교 별명은 정박사, 발명가였다.

서태지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고 국민학교 고학년 때 타고난 미성으로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고, 합창부 활동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때 들국화의 공연은 TV로 보면서 음악에 빠지게 되었고, 처음으로 베이스 기타를 손에 넣게 된다(용돈을 모아 종로에서 1만5천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한다). 맨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마이클 잭슨 때문이었지만 음악을 하게된 계기는 들국화였다. 그렇게 중학교 들어서 메탈에 빠졌고, 신데렐라, 본 조비, 머틀리크루 등에 빠지게 된 서태지는 1985년 말, 친구들을 모아 5인조 그룹 하늘벽을 만들게 된다. 하늘벽이라는 이름은 설악산에 갔다가 발견한 지명이다. 하늘벽은 천여명의 학교 선후배를 모아놓고 강당에서 공연을 하는 등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3학년 2학기가 될 때 즈음 음악에 너무 빠졌는지 성적이 늘 10위권에 들다가 20위까지 떨어지는데, 진학은 서울 북공업 고등학교로 하게 되된다. 성적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대학 진학 없이 취업이 가능해서 였다고 한다. 그리고 1987년, 고등학교 입학하여 1학년 1반 25번 이었던 서태지는 3개월간 부모님을 설득하여 음악을 하기 위해 자퇴하게 된다.


02. 시나위 베이시스트 서태지 [1987년 ~ 1989년]

고등학교 자퇴 후 대학로를 전전하다가 멤버 공고를 보게 된 서태지는 활화산이라는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활화산은 신생 밴드로 베이시스트를 구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던 상황이었기에 실력이 부족했지만 의욕이 넘치는 서태지를 영입하게 된다. 그렇게 활화산과 연습을 하면서 서태지의 베이스 실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되는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활화산 멤버의 군입대로 인해 밴드는 해체하게 된다. 결국 서태지의 권유로 서태지 아버지의 친구가 합주실을 운영 중이었고, 서태지 역시 이곳에서 소속 없이 연습을 하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와중, 가끔가다 합주실에 들려서 연습을 하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이중산과 안면을 트게 되는데, 서태지의 베이스 실력을 눈여겨 본 이중산은 서태지에게 연락을 해서 신중현이 운영하던 라이브 카페 우드스탁에서 연주해보라고 권유를 하게 된다. 다음날, 서태지는 우드스탁에서 이중산의 밴드와 함께 공연을 했고, 현장에 있던 신대철이 서태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신대철은 한달 동안 꾸준히 우드스탁에 놀러오던 머리 긴 미청년인 서태지에게 말을 걸었고, 신대철이 시나위 곡 중 아는 곡 있냐 물으니 전곡을 거의 다 알아서 둘이서 즉흥으로 합주를 하다가 영입했다고 한다. 신대철이 계약금 까지 제시했지만, 서태지는 우상이었던 시나위에 신대철에게 기회를 주는 것 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1989년 7월, 서태지는 보컬 김종서와 드러머 오경환과 함께 1988년의 3집 이후 잠정 휴식 상태였던 시나위의 4집 앨범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시나위 멤버들은 매일 6-7시간을 우드스탁에서 연습하며 앨범을 만들었는데, 이 때 직접 작곡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베이스 라인을 직접 따게 되면서 음악을 만드는 것에 많은 배움을 얻게 된다. 그렇게 1990년 2월, 시나위는 4집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4집은 메탈보다는 조금더 대중성 있는 음악(부활과 비슷함한 음악)을 내세운 앨범이었다. 이 때 즈음 부터 서태지의 아버지도 서태지가 음악을 한다는 것을 인정했고(오아시스 레코드에서 신동이라 부추긴 점이 컸다) 서태지에게도 점점 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서서히 돈도 벌기 시작했다.

*서태지는 당시 18살(고3 이었지만 빠른년생이기 때문에)이었지만 머리 기르고 활동하기가 부담스러워 스무살이라고 속이고 활동했다.


3. 시나위의 해체 [1989년 ~ 1991년]

그렇게 서태지는 시나위 활동을 통해서 번 돈을 음악 장비를 사 모으는데 쓰게 된다. 많은 장비를 모은 뒤, 최종적으로 남은 하나의 장비가 믹서 콘솔이었는데, 당시 모아둔 돈이 천만원 이었지만 콘솔의 가격은 2천만원이었고, 결국 아버지께 부탁해서 지원을 받고 구매, 집에 레코딩이 가능한 스튜디오가 완성된다. 그 이후로 타 가수들의 녹음을 도와주며 소소하게 활동 외 수입을 얻기 시작한 것은 물론, 녹음에 대한 이해도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졸업하는 나이를 맞이한 서태지는 친구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 처음으로 술을 마셨지만 자신과 맞지 않아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 본격적으로 시나위 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한 서태지. 1990년 연예가중계와 대종상 시상식에 얼굴을 비친 뒤, TV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TV는 락밴드로써는 제한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반면 소극장이나 잠실 체조경기장, 88체육관 등지에서는 시나위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여러 스폰서 제의도 받게 되지만 시나위는 음악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서태지가 시나위에 들어간지 2년즈음 되었을 때,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공연 두시간 전, 88체육관에 공연하러 갔더니 공연장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수준의 사기를 당하게 된다. 신대철은 제작사와 싸우다가 술을 먹고 뛰쳐나갔고, 공연을 해야한다는 김종서를 따라 서태지는 단 둘이서 공연을 진행하게 된다. 그렇게 공연은 어떻게 잘 마무리 되었지만 멤버들 사이의 골은 더 없이 깊어졌고, 논의 끝에 시나위는 해체하게 된다. 이에 대해 최진열의 말로는 생활고로 해체 했다 하고, 소문에는 신대철이 서태지 담배 심부름을 시켜서 해체 됐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인 것이 사실이었다.

*신대철의 말로는 김종서가 솔로 제안을 받으면서 먼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김종서가 나가면서 절친인 서태지도 나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결성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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