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영과 와와: 1990, 진정한 댄스 그룹 [KPOP STORY]

1990년, SM 1호 가수인 현진영은 솔로로 데뷔했지만, 뒤에 와와라는 백댄서를 달고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했다. 당시에 비슷한 형태로 가수 뒤에 백댄서를 두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했지만, 와와처럼 데뷔부터 함께하는 형태의 백댄서는 현진영이 처음 선보이게 된 것이다. …

KPOSTORY_현진영과 와와

1990년, SM 1호 가수인 현진영은 솔로로 데뷔했지만, 뒤에 와와라는 백댄서를 달고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했다. 당시에 비슷한 형태로 가수 뒤에 백댄서를 두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했지만, 와와처럼 데뷔부터 함께하는 형태의 백댄서는 현진영이 처음 선보이게 된 것이다. 여러 클럽에서 대회 형태로 개최된 오디션을 통해, 후에 가요계에 이름을 떨치게 될 많은 댄서들이 와와의 멤버로 활약을 하게 된다.


——————————


1. 현진영과 와와의 등장 (1989년 ~ 1990년)

1981년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수만은, 유학 초기 MTV의 개국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유학생활 내내 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에 적용 시킬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1985년, 한국에 귀국한 뒤, 홍종화를 영입하고 직접 뉴에이지 음악을 시도하지만 큰 실패를 맛보게 된다. 결국 제작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수만은 1988년, 바비 브라운과 블랙 뮤직을 하는 아티스트를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우선 홍종화에게 뉴 잭 스윙과 힙합 같은 트렌디한 블랙뮤직의 제작을 맡기는 것을 시작으로, 노래와 춤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예비 스타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캐스팅을 위해 이수만이 영입하게 된 사람이 최진열인데, 최진열은 1980년대 명동이나 이태원에서 DJ를 하면서 이미 국내 굴지의 댄서들과 인맥을 트고 있던 상황이었고, 그런 최진열에게 이수만은 흑인 음악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1989년, 최진열은 자신이 알고있던 최고의 댄서인 이주노를 찾아가 캐스팅을 하게 되었는데, 이주노는 당시 오복과 오복성 활동중이었기 때문에 팀을 배신할 수 없어 고사하게 되었고, 이주노가 현진영이라는 친구를 소개해주게 된다. 현진영은 본인의 유튜브에서 이주노와 본인 둘 다 오디션을 봤고, 이수만이 “목소리에 흑인의 쇳소리가 있다”며 본인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이주노 그리고 최진열의 회고록을 참고해보면 이주노가 고사한 것이 더 자연스럽다.

춤 오디션과 노래 오디션(현진영은 오디션 곡을 조하문의 “내 아픔 아는 당신께”(1989)로 기억하지만 최진열 말로는 진미령의 “아하”(1989)로 봤다고 한다)을 통해 이수만은 현진영을 캐스팅하게 되었고 SM기획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약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갖고 현진영에게 혹독한 트레이닝을 시키게 된다. 우선 경희대학교에서 성악 기초 수업을 들으면서 홍종화에게 갖가지 노래 트레이닝(물구나무를 서서 노래를 하는 등, 여러 환경에서도 지치지 않고 노래를 할 수 있는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이는 현진영이 후에 이어받아 여러 가수들을 트레이닝 하게 된다)을 받았고, 춤 실력의 향상을 위해서 당시 이태원의 한 클럽인 소울트레인에 출입을 시켰다. 故서치훈이 운영하던 소울트레인은 미군들이 주로 출입하던 외국인 전용 클럽이었는데, 클럽의 DJ가 블랙뮤직을 많이 트는 덕분에 여러 미군 댄서들이 출입했고 그 중에서도 미군 중에서 가장 춤이 뛰어났던 Damon William이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현진영이 더 리얼한 흑인 댄서의 느낌을 갖기를 원했던 이수만은 서치훈과 이야기를 나눠 현진영만 특별하게 클럽에 출입을 시켰다.

*1989년, 소울트레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길 건너편의 문나이트로 확장이전하게 된다.

현진영의 실력이 어느정도 무르익었을 무렵, 이수만은 현진영에게도 바비 브라운처럼 두 명의 백업 댄서들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캐스팅을 위해 이태원의 여인도시라는 클럽에서 댄스 경연대회를 열게 된다. 우선 월말대회를 통해 본선 진출자를 뽑고 최종적으로 연말대회에서 우승한 팀이 우승하는 시스템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김성재와 이현도의 연락을 받은 강원래와 구준엽이 월말대회에 참가해 각각 1등과 3등을 하게 되면서 월간 대회에 진출하게 되었다(당시 심사위원은 김창환). 그 후, 연말 대회에서 강원래와 구준엽은 팀을 이루어서 참가를 하게 되었고, 미애와 유영진의 팀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연말 대회에는 최진열과 김승현(MC 출신 방송인)이 심사위원이었고, 현진영 역시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강원래와 구준엽이 이주노, 양현석을 만나 이겼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해당 이야기는 다른 대회의 이야기이다.

춤 실력이나, 시원시원한 기럭지, 그리고 패션 등을 봤을 때 너무나도 잘 맞는 조각이 될 거 같다는 생각에 SM기획은 강원래와 구준엽에게 백업 댄서 역할을 제안하게 되었고, 당시 군휴학 중이었던 강원래와 구준엽은 일반적인 백업 댄서보다는 큰 역할을 한다는 조건으로 합류를 하게 된다. 그렇게 댄스팀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와와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것을 시작으로, 강원래와 구준엽은 안무 제작은 물론, 앨범 자켓 디자인 등의 역할도 맡아서 하게 된다. 이 둘이 백업 댄서를 하게 된 데에는 현진영의 춤 실력도 큰 역할을 했는데, 현진영은 못 추는 춤이 없을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고, 스킬적인 면에서도 누구보다 뛰어났다고 한다(다이렉트 헤드스핀을 12바퀴를 돌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선천적으로 짧은 기럭지 때문에 그렇게 멋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현진영은 워낙 거칠게 살아온 이력이 있었던 만큼 여러 문제아 기질을 보였는데, 숙소를 탈출하고 새벽에 놀러다닌다던가 하는 일들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 현진영을 관리하기 위해 이수만은 거의 반 감금 상태로 현진영을 케어했고, 일반적인 매너나 예절 교육도 직접 도맡아서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나이트에서 이주노를 만난 현진영이 이주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생겼는데, 이주노가 이에 대한 복수로 로저래빗 춤을 박남정과 프렌즈에서 먼저 선보이는 일이 생겨버린다. 물론 단순한 복수심이라기 보다는, 로저래빗 춤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어버린 상태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SM과 이수만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었고, 그들은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기 위해 토끼춤이라는 한국식 명칭을 지으면서 토끼춤의 원조는 현진영이라는 명분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오랜 준비 끝에 1990년 4월, 데뷔곡 야한여자(1990)가 수록된 싱글 앨범을 선행으로 발매하고 반응을 지켜보게 되는데, 이는 대중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함이었고, 어느정도 반응이 있음을 느낀 이수만은 같은 해 6월 19일, KBS의 스타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현진영과 와와를 데뷔시킨다. 대한민국 최초로 헤드셋형 마이크를 착용하고, 바비 브라운이나 MC 해머와 비슷한 승마복 차림에 두 명의 댄서를 둔 현진영은 방송가에 연줄이 있던 이수만 덕분에 시작부터 메이저 프로그램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지만 처음부터 큰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8월에 정규 1집 <New Dance vol. 1>(1990.08.01)이 나오면서 후속곡인 슬픈 여자가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요톱10에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터뜨리며, 비디오시대를 이끌어갈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현진영은 슬픈마네킹으로 꽤 긴 시간 활동을 하게 되는데, 1990년 말, 와와였던 강원래와 구준엽이 입대 해야 할 날짜가 다가오면서 와와에 대대적인 개편이 일어난다. 2인조에서 5인조로 변경된 뒤, 다시 3인조 그리고 2인조 순서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멤버는 아래와 같다.

  • 와와 1기 – 강원래, 구준엽
  • 와와 1.5기 – 강원래, 구준엽, 김송, 이의정, 이의선
  • 와와 1.5기 II – 김성재, 김재현, 김송, 이의정, 이의선(1991년 1월 10일 발표)
  • 와와 1.5기 III – 김성재, 손성욱, 이현도
  • 와와 2기 – 김성재, 이현도

강원래와 구준엽이 떠나게 되면서 김성재를 추천하게 되었고, 현진영은 동대문의 벤허라는 클럽에서 춤을 추는 둘을 보게 된다. 절친이었던 이현도와 김성재는 함께 와와를 위한 오디션을 보지만, SM에서는 김성재만 원했고 이현도는 탐탁치 않아했다. 아무래도 강원래와 구준엽 같이 길쭉길쭉하고 시원시원한 댄서를 원했기 때문에 비교적 키가 작은 이현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와와 멤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고(일단 SM 측에서 봉급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현도가 꾸준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현도 역시 와와에 합류하게 되었다.


2. 와와의 해체와 재구성 (1991년 ~ 1993년)

슬픈 마네킹으로 꾸준히 방송을 하며 1991년을 보낸 현진영은 점점 인기가 좋아지면서 각종 CF나 영화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으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이수만은 본인이 프로듀싱한 영화 난 깜짝 놀랄 짓을 할 거야의 OST 작업에 현진영을 참여시키는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하지만 주변에서 뻗쳐온 어두운 손길의 유혹에 혹했던 현진영은 마약에 손을 댔고, 91년 8월, 부산에서 찰스 주니어 행사장에서 갑작스레 구속된다. 이수만은 분노를 참고 부산으로 내려가 현진영을 면회하게 되는데, 화를 내기는 커녕 현진영을 걱정하며 위로하는 말을 건내게 된다.

*현진영은 유치장 안에서 온갖 수모를 당했는데, 변기 안에 전등 스위치가 있으니 찾아서 끄라는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이 갑자기 없어져 버린 최진열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 자리를 제안받고 회사를 옮기게 된다.

*와와로 활동하던 김성재와 이현도 역시 와와를 그만두고 각자의 길(김성재는 대학에 진학했고, 이현도는 음악공부에 매진)을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약 반년동안 유치장 생활을 하게 된 현진영은 깊이 반성을 하고, 문나이트에서 교포 출신이며 미국 줄리어드 음대 피아노과를 전공한 이탁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음악 세포가 살아나게 되면서 다시금 음악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몇 달을 이탁과 함께 삼각김밥만 먹으며 창작에 몰두하던 현진영은 후에 본인 최고의 히트곡이 될 흐린 기억 속의 그대(1992)를 비롯한 2집 수록곡들을 작곡하게 된다. 

어느 정도 완성된 2집을 들고 SM에 찾아간 현진영은 이수만에게 음악을 들려줬고, 음악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본 이수만은 현진영의 2집 준비에 착수하게 된다. 그렇게 2집을 준비하던 와중에 이현도가 SM을 찾아오게 되는데 이현도는 독학을 통해 어느정도 작곡 능력을 키운 상태였고, 그의 첫 작품인 “너에게만”(1992)현진영에게 주게 된다(이수만이 해당 곡을 듣고 굉장히 놀라워하며 곡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현도는 본인과 김성재의 활동을 위해 와와라는 이름을 달라고 하지만, 현진영은 거부하고, 반대로 와와로 다시금 활동할 것을 제안하지만 이번에는 이현도가 거절하게 된다. 그렇게 현진영이 부산의 행사장에서 구속된지 꼭 1년이 되던 1992년 8월, 현진영은 2집 앨범 <New Dance vol. 2>(1992.08)을 발매하게 된다.

비록 이현도와 김성재를 다시 영입하는데 실패하면서 기존의 2인 체제 와와를 구성하는데에는 실패하지만, 새로이 다인 체제의 댄스팀을 구성하고 그들을 와와로 칭하게 된다. 하지만 현진영이 와와라는 이름을 빼고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와와의 지분과 존재감은 굉장히 줄어들게 된다. 현진영은 와와 외에도 신세대 무용단이나 소울트레인이라는 팀과도 같이 공연을 하게 된다.

그렇게 와와는 대박이 나버린 현진영의 2집, 그리고 선주문만 50만장 가까이 들어온 3집 활동까지 함께하지만 3집 활동을 시작하고 한 달만에 현진영이 또 한 번 구속되면서 와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3집의 와와 3기는 두 명이 아닌 백댄서 전체였고, 그중 한 명이 션(지누션)이다.

현진영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 읽기

KPOP100_002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