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 2화: SM 기획의 성공과 추락

KPOP의 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그룹 세 팀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그리고 현진영을 꼽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세 팀 모두 SM의 역사와 크거나 작거나 관여되어있다는 것이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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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의 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그룹 세 팀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그리고 현진영을 꼽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세 팀 모두 SM의 역사와 크거나 작거나 관여되어있다는 것이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에 이어서 현진영의 2집이 대 히트를 쳤고, 현진영의 1집 활동 당시 와와로 활약하던 두 청년이 결성한 듀스가 그 뒤를 이어 1993년 초반을 이끌었는데 이러한 흐름을 만든 것이 바로 이수만과 SM이 KPOP 역사의 시작점에 그은 가장 큰 획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SM은 모종의 사건으로 현진영을 활동 중단시키고 한동안 음악 업계에서 기를 펼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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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SM기획의 첫 번째 몰락 (1990년 ~ 1993년)

1990년 여름, 현진영을 선보인 이수만은 완전히 SM기획 건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쿠웨이트에서 지내던 이수만의 둘째 형인 이수영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이수만이 해밍웨이의 운영을 이수영에게 맡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부차적인 직업을 넘기고, SM 건물로 거처를 옮기면서 에너지를 오롯이 SM에 쏟을 수 있게 된다.

당시 궤도에 올라선 현진영과 와와는, 1년을 넘는 시간 동안 활동하게 되는데, 중간에 강원래와 구준엽이 입대를 하게 되면서 몇번 와와의 멤버를 바꾸게 된다. 몇번의 멤버 교체 후, 이현도와 김성재가 멤버로 들어오게 된다. 현진영과 와와는 점점 높아져가는 인기에 활동의 범위도 넓어져갔는데, 광고 촬영은 물론 영화에 까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으며 이수만과 함께 영화 <난 깜짝 놀랄 직을 할 거야>의 OST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성공적인 스타로 자리잡을 것만 같았던 현진영과 와와였지만, 항상 어머니의 부재를 느끼던 현진영은 어두운 유혹에 넘어간 상태였다. 1991년 9월 6일, 부산에서 광고 모델을 하고 있던 찰스 주니어의 행사장에서 공연을 하던 와중에 체포를 당하게 된다. 죄목은 대마초 흡연이었고, 현진영은 그대로 부산에서 수개월간 구치소 생활을 하게 된다. 이수만은 화를 누른채로 부산에 내려가 현진영을 면회하게 되는데, 화를 내지 않고 걱정해주는 것과 동시에 현진영에게 깊게 반성하라는 말을 해주게 된다. 몇 개월 동안의 수감 생활 뒤, 출소한 현진영에게 이수만은 매니저를 보내 두부를 사서 먹여줬고, 사무실에 찾아온 현진영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등 나름대로 현진영이 추스를 수 있게 도움을 준다. 

현진영이 수감된 사이에 SM에서는 몇가지 변화가 생긴다. 우선 최진열이 SM을 나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로 합류하게 됐다. 최진열에게 영입 제의가 왔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은 청년 셋이 모인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그룹이었지만 오랜 시간 이주노, 양현석과 쌓아온 우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이수만은 그들이 현진영과 와와가 어느정도 닦아놓은 길 위에서 성공을 이루는 걸 보면서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이수만은 SM을 위해 뭔가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5. SM의 새로운 프로젝트 (1990년 ~ 1991년)

현진영을 훌륭한 댄스가수로 데뷔시킨 이수만이었지만, 사실 이수만의 본 장르는 발라드에 가까웠다. 70년대 후반에 이문세에 밀리면서 사실상 가수를 접고 유학을 가게 되었지만, 후배 발라더들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항상 마음 한켠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이수만이 MBC에서 팝스 투나잇이라는 라디오를 하던 시기에 노래그림이라는 그룹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종종 그들의 노래를 라디오에서 틀고는 했다. 노래그림의 노래는 대중적으로 히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수만 외에도 변집섭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노래그림의 허락을 받고 종종 그들의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수만과 한동준이 만나게 되는데, 그 계기가 굉장히 의외의 곳에서 생겨나게 된다. 이수만의 첫 째 형 이수완이 당시에 홍익대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어쩌다 홍익대에 방문해서 빈 강의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던 한 여학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여학생은 노래그림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우연을 통해서 이수만은 한동준을 만나게 되어 그를 영입하게 된다. 애초에 이수만의 구상은 노래그림을 그대로 데뷔시키는 것이었지만, 한동준을 제외한 멤버들이 각자의 이유로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동준의 솔로를 준비하게 된다. 

앨범을 준비하게 된 한동준은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에 신입 작곡가의 음악을 사용해서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고, 그런 한동준을 위한 작곡가를 찾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 때 한동준은 한 아티스트를 염두에 두게 되는데, 그 사람은 직후에 SM 3호 가수가 되는 김광진이었다. 노래그림으로 활동하던 시절, 잡지 월간팝송에서 노래그림과 다른 한 팀에게 데모테이프를 받아보고 둘 중 하나를 제작하겠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다른 한 팀이 김광진이 소속된 나르시스였다. 그렇게 나르시스에 관심을 갖게 된 한동준은 앨범을 제작하게 되면서 나르시스의 노래를 만든 사람을 수소문하게 된다. 

SM에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미래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취업을 위해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때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던 사람이 음악을 그만두고 투자회사에 다니던 나르시스의 작곡가와 미팅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준은 그녀를 통해 나르시스의 노래를 만든 김광진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SM에 합류하게 된 김광진은 한동준에게 다섯개의 곡을 준 것은 물론, 자신의 앨범의 모든 노래들을 작곡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의 앨범은 굉장히 부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모두 SM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한동준과 김광진은 SM을 떠나고 난 뒤에 유명세를 얻게 된다. 한동진은 “너를 사랑해”(1993)를 통해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김광진은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1994), 이승환의 “덩크슛”(1993) 등 여러 히트곡을 만든 히트 작곡가로 거듭나게 된다. 


6. 현진영과 SM 최초의 1위 하지만 (1992년 ~ 1993년)

몇 개월 간의 구치소 생활 끝에 출소한 현진영은 선뜻 다시 음악을 하지는 못한다. 사실상 SM의 입장에서도 이미 현진영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상태였고 현진영 역시 앨범을 준비하기에는 당장 아버지의 병원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선은 건설 현장에서 흔히 말하는 노가다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매니저가 현진영을 알아보게 되면서 힘내라는 의미로 보너스를 넣어주게 되는데 그러한 친절이 불편했던 현진영은 결국 SM 몰래 밤 업소 일에 손을 대게 된다.

SM측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게되어 이수만의 귀에도 그러한 사실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수만은 현진영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 까지는 잘 마무리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 굉장한 창피함을 느꼈던 현진영은 다시금 가수로 재기할 마음을 먹고 문나이트에 방문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문나이트에서 두 가지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우선 서태지와 아이들로 성공 궤도에 오른 양현석을 만나게 되는데, 양현석이 본인은 뜨는 해, 현진영은 지는 해 라는 이야기를 장난처럼 하게 되었고, 이 일은 현진영의 의욕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문나이트에서 교포 출신이며 미국 줄리어드 음대 피아노과를 전공한 이탁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음악 세포가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을 이탁과 함께 삼각김밥만 먹으며 창작에 몰두하던 현진영은 후에 본인 최고의 히트곡이 될 흐린 기억 속의 그대(1992)를 비롯한 2집 수록곡들을 작곡하게 된다. 

어느 정도 완성된 2집을 들고 SM에 찾아간 현진영은 이수만에게 음악을 들려줬고, 음악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본 이수만은 현진영의 2집 준비에 착수하게 된다. 그렇게 2집을 준비하던 와중에 이현도가 SM을 찾아오게 되는데 이현도는 독학을 통해 어느정도 작곡 능력을 키운 상태였고, 그의 첫 작품인 너에게만(1992)현진영에게 주게 된다(이수만이 해당 곡을 듣고 굉장히 놀라워하며 곡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현도는 본인과 김성재의 활동을 위해 와와라는 이름을 달라고 하지만, 현진영은 거부하고, 반대로 와와로 다시금 활동할 것을 제안하지만 이번에는 이현도가 거절하게 된다. 그렇게 현진영이 부산의 행사장에서 구속된지 꼭 1년이 되던 1992년 8월, 현진영은 2집 앨범 <New Dance vol. 2.> (1992.08)을 발매하게 된다.

*너에게만을 현진영의 2집에 수록하게 된 계기는 이수만 보다는 현진영이 후배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진영의 2집은 대한민국 최초로 힙합이라는 표기를 한 메이저 앨범으로, 현진영 본인의 색을 더욱 진하게 표현하기 위해 와와라는 이름 없이 활동을 하게 된다. 2집 앨범은 1집과 비교해서 더욱 블랙뮤직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앨범이었는데, 우선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면서 힙합의 요소인 음악, 랩, 댄스 그리고 패션에 대해 대중들이 친숙함을 느끼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그런 정세를 읽은 이수만이 미국에서 직접 본토의 힙합 의상(말콤 X에서 따온 X가 그려진 후드와 힙합바지)을 공수해오는 등, 여러모로 힘을 쓰게 되면서 그 시너지 효과가 굉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진영의 2집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각종 순위 프로그램에서의 1위는 물론 여러 상을 수상하기까지 까지 했다. KBS 가요 톱 10에서 5주 1위,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6주 1위, SBS 인기가요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1992년 MBC 가요대제전 신인상을 수상, SBS 스타상에서는 예쁜 오빠상을 받는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과의 라이벌리가 형성되면서 비디오 가수의 양대산맥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의 스타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현진영의 2집 앨범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게 된다.

1993년 여름, 현진영과 SM은 3집 앨범을 위한 준비를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힙합에 락 그리고 태평소를 비롯한 국악까지 첨가한 퓨전 음악에 가까운 앨범을 발매한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기존보다 더욱 블랙 뮤직에 가까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분주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직접 아프리카 원주민의 소리를 직접 따고 인순이에게 피쳐링을 부탁했으며, 재즈를 활용 하거나(“바로 너!”), 과거의 명곡들을 샘플링 하는 등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최대한 신경을 썼고, 직접 흑인 댄서들을 섭외하고 와와의 멤버도 추가 영입 하면서 힙합이라는 슬로건을 제대로 내밀 준비를 한다. 그렇게 <Int.World Beat And Hiphop Of (New Dance vol. 3)> (1993.09)을 발매하게 되는데, 현진영은 이미 슈퍼스타였기 때문에 선주문만 50만장에 가깝게 들어올 정도였다.

*2, 3집의 와와 3기는 두 명이 아닌 백댄서 전체였고, 그중 한 명이 션(지누션)이다.

하지만 겉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현진영은 여러가지 우여곡절로 인해 피폐해진 상태였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SM의 재정 상태도 굉장히 위태한 상황이었다. SM의 재정은 음반판매를 맡고 있던 서라벌 레코드의 판매량과 매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서라벌 레코드가 뉴키즈 온더 블록의 콘서트를 주최하는 과정에서 여러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면서 거의 부도가 나게 된 것이었다. 서라벌 레코드의 악재 때문에 SM은 현진영의 2집 앨범(85만장)에 대한 판매 수익 약 5억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여러 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현진영은 10월, 3집의 타이틀곡 “두근두근 쿵쿵” (1993)으로 인기몰이를 이어가지만, 11월 13일, 이번에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이 된다. 현진영은 절친 이탁과 함께 종종 필로폰 투약을 하고 있었고, 이런 마약의 줄기를 쫓던 경찰이 8개월간의 수사 끝에 유통망을 검거하게 되면서 현장에 있던 현진영과 이탁을 체포한 것이었다.

*당시 이탁은 전역한 구준엽과 함께 탁2준2를 결성해서 활동중이었고, 이 팀 역시 해체가 된다.

이 일로 SM은 사실상 폐업을 해야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서라벌 레코드에서 선주문으로 제작한 40만장의 앨범과 브로마이드 등의 캐릭터 상품들을 폐기처분 해야했기 때문이다. 결국 SM은 다시는 현진영을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는다고 선언하게 되고, 이 때 생긴 부채를 무마하기 위해 본인이 운영하던 역삼동의 카페와, 월미도의 레스토랑 해밍웨이를 처분하게 된다. 굉장히 상황이 어려워진 SM이었지만 그래도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이수만은 현진영을 용서한다고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SM은 정말 나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3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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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_STORY_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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