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 3화: SM의 계속되는 실패

많은 사람들이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첫 가수를 H.O.T.로 알고있는 경우가 많지만, 현진영이 방송에서 관련해서 이야기를 한 이후부터는 현진영이 SM 1호 가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SM에서 선보인 두번째 가수는 누구일까? H.O.T.라고 생각할 사람이 …

SM_STORY_03

많은 사람들이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첫 가수를 H.O.T.로 알고있는 경우가 많지만, 현진영이 방송에서 관련해서 이야기를 한 이후부터는 현진영이 SM 1호 가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SM에서 선보인 두번째 가수는 누구일까? H.O.T.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현진영H.O.T. 사이에는 꽤나 많은 가수들이 데뷔를 하고 사라지거나 SM을 떠나 가수 생활을 이어갔다. 후에 SM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유영진부터, SM을 나간 뒤에 성공한 한동진이나 김광진 그리고 야심차게 내놨지만 성공하지 못한 메이저와 J&J까지. SM이 H.O.T.로 성공하게 되는 1996년까지 SM은 많은 가수들을 배출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한 상태를 유지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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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SM 엔터테인먼트의 영혼, 유영진의 발견 (1993년)

1993년, 비록 한동준과 김광진을 키우는데에 실패했지만 SM은 여전히 새로운 예비 스타들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1993년 4월 9일자 잡지 TV저널에 올라온 SM의 공고를 본 갓 전역한 유영진이 SM에 데모 테잎과 함께 찾아가게 되면서 SM의 미래는 바뀌게 된다.

유영진과 SM의 연은 1989년에 시작된다. 문나이트에서 춤을 추던 춤꾼이었던 유영진은 한 디스코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고 월간 대회에서 우승 한 뒤, 연말 대회에서 철이와 미애의 미애와 팀을 이뤄 출전해 2등을 하게 된다. 당시 1등을 한 강원래와 구준엽은 SM에 캐스팅 되어 와와로 활동하게 되었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듯이 SM과 연을 만들어둔 유영진은 강원래와 구준엽이 SM에 캐스팅 된 뒤에 그 둘을 따라 종종 SM의 사무실에 놀러가곤 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입대를 하게 된 유영진은 군 예술단의 무용파트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주변에 음악하는 동료들을 통해 조금씩 기타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족한 실력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점점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당시 함께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Groovie K와 유준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군 생활동안 120곡에 가까운 노래를 만들고 전역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전역을하고 TV저널에서 SM의 공고문을 보게 된 유영진은 그대로 데모 테잎을 들고 SM기획 사무실에 찾아가게 된다. 유영진에게 데모 테잎을 받은 담당 직원은 사무적으로 유영진의 접수를 받을 뒤 곧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유영진은 어떻게든 이수만 본인에게 바로 평가를 받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좋다’, ‘나쁘다’ 정도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조르게 된다. 그렇게 담당 직원은 당시 건물 4층에서 거주하던 이수만에게 테잎을 전달하게 된다. 유영진은 답변을 듣기 위해 몇시간을 기다린다. 

데모 테잎을 들어본 이수만은 사무실로 내려와 유영진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생소했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로 올라선 R&B 계열의 음악으로 이루어진 데모 테잎이었는데, 트렌드를 읽고 있음을 느낀 이수만은 상당한 흥미를 갖고 유영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수만은 어렴풋이 유영진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높은 가능성에 비해서 당장은 아마추어 티가 많이 나는 유영진을 덥썩 받아주기는 어려웠고, 결국 이수만은 유영진의 의견을 물어본다. 유영진은 가수로 받아주기만 하면 배우면서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수만은 결국 유영진에게 다음날 까지 10곡을 더 가져오라는 임무를 내리게 된다. 유영진의 의지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다음날 10곡을 가져온 유영진에게 이수만은 또 다시 10곡을 만들어 오라고 한다. 이수만은 그렇게 유영진의 가능성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며칠이 지난 뒤, 유영진에게 연락해 점심을 먹자고 한다. 그렇게 1993년 4월 19일, 유영진이 SM에 합류하게 된다.


8. 계속되는 실패 (1993년 ~ 1995년)

유영진을 영입하고 반년 정도 지난 어느 날, 3집 앨범을 발표한 현진영의 필로폰 사태가 터지면서 SM은 크게 휘청이게 된다.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터지면서 SM 기획은 선주문만 50만장 가까이 되던 현진영의 3집 앨범을 전량 폐기해야했다. 그나마 SM을 유지 시켜줬던 원동력은 이수만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면서 벌어들인 수입과, SM 소속 방송인들인 김승현과 이홍렬이었다. 하지만 사업의 중심이 되어줄 메인 스타가 굉장히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렇게 SM에는 유영진 외에도 임범준이나 서연수 같은 예비 가수들이 있었다. 

임범준과 서연수는 둘 다 외모적으로 뛰어났고 음악적으로도 각자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서연수의 경우에는 타고난 미성을 갖고 있었고, 임범준은 헤비메탈 밴드 출신으로 굵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의 조합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두 사람 전부 작사/작곡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수만으로서는 이 둘에 대해 큰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이수만은 조금은 서두르는 느낌으로 이 둘을 메이저라는 팀으로 구성하여 데뷔시키게 된다.

1993년 말 발매된 메이저의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락발라드 느낌의 곡으로 채워졌고, 데뷔와 동시에 쇼케이스 겸 콘서트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메이저는 빠르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들의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파격적인 락 스타일의 패션과 스타일이 주 요인이 되어 인기를 끌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메이저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당시 한국 정부의 연예계 탄압에 영향을 받게 된 것이었다. 1994년 말, 메이저의 2집이 발매 되었는데, 그들의 화려한 머리색이 문제가 되어 방송 출연 금지 처분을 받게 된 것이었다. 메이저의 멤버 둘은 스타일을 포기하거나 음반활동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락 스피릿에 충실했던 두 멤버는 그렇게 비굴하게 음악활동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그렇게 메이저는 사라지게 된다.

이수만이 과감하게 영입했던 유영진 역시 1993년 11월에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유영진은 같은 해 초에 SM에 합류한 이후, SM 내부에서 여러 방면에서 인하우스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한국 최초의 R&B 앨범중 하나인 본인의 1집 앨범, <Blues in Rythm>(1993)을 발매한다. SM과 유영진은 이 앨범을 통해 R&B라는 새로운 장르를 국내에 장착시키는데 일조하게 되지만, 이 앨범 역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유영진의 1집 앨범이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메이저가 궤도에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던 1994년 6월, SM은 J&J라는 또 다른 2인조 그룹을 데뷔시킨다. 현진영이나 유영진의 케이스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이수만은 세계 트렌드의 선두에 있는 블랙뮤직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고 그런 블랙 뮤직을 한국인들보다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교포 출신의 김주현(영문이름 Jay Kim)과 강우지(영문이름 Jay Kang)에게 큰 기대감을 품었다. 이수만은 LA에서 CM송 업체를 하던 절친 김영민을 통해 LA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두 청년을 알게 되었고, 현진영이 포문을 열어둔 힙합 시장에 재진입 하기 위해서 서둘러 그들을 트레이닝 시키게 된다.

대학교 전공이 음악이었던 김주현은 작곡이 가능했고, 강우지의 경우에는 춤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게 SM 건물 2층에 터를 잡게된 둘은 몇달간의 빠른 준비과정을 마치고 곧바로 J&J라는 팀명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1994년 7월, 1집 앨범 <Guitar And Dance Single 1>로 데뷔한 J&J는 이수만이 갖고있던 커넥션을 통해 굉장히 빠르게 방송데뷔를 하게 된다. “미지수야 미지수” 라는 곡으로 방송 데뷔를 하게 된 J&J는 독수리춤을 내세워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데뷔를 한 나머지 전체적인 기량에서 아쉬움이 뻔히 보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데뷔 몇 달만에 J&J는 활동을 멈추게 된다. SM과 이수만에게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줄 재정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9. 위기극복을 위한 SM의 발버둥 (1994년 ~ 1995년)

SM의 음악 사업이 잘 풀리지 않고있던 와중에 그나마 SM을 지탱해주던 사업은 바로 SM 소속의 방송 MC들이었다. SM의 창립 멤버중 하나였던 김승현부터 시작해서, 이홍렬, 전유성, 이경규, 신동엽 그리고 이영자까지, 나름대로 호화로운 MC 라인업을 갖고 있던 SM 기획은 이들이 방송에서 활약한 덕분이 1990년대 초반의 암흑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 방송가에는 여러 변화가 일어났는데, 1990년 11월,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한 SBS가 개국한 것으로 시작해서 1995년 3월에는 케이블 TV가 개시되었고, 이를 통해 기존에 세개였던 TV 채널이 공중파 다섯개(EBS 포함)에 케이블 채널까지 더해지게 된 것이었다. 이수만은 SM이 데리고있던 MC들을 더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 1995년에 SM TV라는 방송 외주 제작 프로덕션을 차리게 된다.

하지만 당시의 방송업계는 관례라는 이름하에 여러가지로 하청이나 외주업체에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방송 외주 제작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의 실적과 상관없이 외주 업체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같았고, 기본적인 방송 제작에 필요한 금액만 지불할 뿐, 방송에 필수적인 부가요소(연출, 제작, 조명, 편집 등)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SM TV가 만든 방송 프로그램이 시청률 40%를 기록하더라도 SM이 가져가는 금액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기본적으로 큰 수익을 내기 힘든 수익 구조였던 것이다. 결국 SM은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일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4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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