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 4화: High-Five of Teenagers

1996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SM과 이수만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버티는 자에게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10대들을 주름잡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할 새로운 가수의 탄생을 모두가 기다리게 되었고, 이수만은 이미 그 전부터 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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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SM과 이수만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버티는 자에게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10대들을 주름잡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할 새로운 가수의 탄생을 모두가 기다리게 되었고, 이수만은 이미 그 전부터 그에 맞춰서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이수만은 SM 기획을 다시금 SM 엔터테인먼트로 재등록하고, 지난 10여년간 댄스음악을 하기위해 쌓아놓은 노하우를 총 동원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뒤를 이을 그룹을 준비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High-Five of Teenagers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SM과 이수만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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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High-Five of Teenagers 프로젝트 (1995년)

1995년 2월, 이수만은 SM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SM 기획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SM 엔터테인먼트로 변경한다. 기존에도 국문으로는 SM 기획이라고 표기하고, 영문으로 표기할 때에는 SM 엔터테인먼트라고 표기했었지만, 회사의 미래를 조금 더 멀리 내다보기 시작하면서 영문으로 이름을 변경한 것이다. 회사의 이름도 변경하면서, SM TV를 설립해 방송 제작을 통한 사업확장을 노렸지만 생각처럼 큰 이윤을 내지 못한 이수만은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1995년 중반, 《KBS 가요 톱10》 출연이 예정되어있던 듀스가 방송 펑크를 낸 뒤에 해체를 선언하면서 같은 해 7월에 해체를 선언하고,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조만간 은퇴를 한다는 소문이 방송가에 맴돌게 되면서 이수만은 이들을 대체할 그룹을 제작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90년대 중반 당시는 당시 음악시장에서 10대들이 가진 영향력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와중이었고, 이수만과 SM은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사용하여 이들의 마음을 차지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이수만은 SM 전체 회의를 소집하게 되는데(당시 회사에 남아있던 사람은 현진영의 로드매니저에서 시작해서 총괄 매니저이자 대표이사로 올라선 정해익, 차기 아티스트의 로드매니저이자 캐스팅 디렉터가 될 김수현, 새로 입사한 김경욱, SM의 새로운 총괄 프로듀서 유영진 등이 있었고, 기존에 총괄 프로듀서 역할을 맡고있던 홍종화는 미국 유학길을 위해 회사를 퇴사한 상태였다), 이수만이 “High-Five of Teenagers” 프로젝트라고 명명한 이 새로운 프로젝트의 첫 미팅에 모인 직원들은,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보다 전략적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이수만이 객관적인 자료를 얻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여론조사기관에 의한 설문조사였다. 10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실제 10대들의 생각이 어떤지 파악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결과의 대부분이 기존의 이수만의 아이디어와 비슷했지만, 10대들은 같은 10대의 가수가 나오길 원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10대 남자 아이들 5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을 만들기 위해서 이수만은 신문에 오디션 공고를 내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SM 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보내서 길거리 캐스팅을 맡기게 된다.


11. 길거리 캐스팅 (1995년 ~ 1996년)

이수만은 길거리 캐스팅과 오디션을 통해 다수의 재능들을 연습생으로 뽑고, 트레이닝 과정에서 그들의 아이돌적 기량과 성품을 파악하고 최종적으로 다섯 명을 선발하는 플랜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최대한 많은 인재들을 만나보고 오디션을 봐서 발탁해야하는 상황이었다. 80년대 후반에 현진영을 캐스팅 했을 때에는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지만,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듀스가 10대들에게 인기를 끌고 난 90년대 준반에는 많은 10대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길거리 캐스팅에 전념한 SM의 직원들은 여러 10대 소년들을 SM에 데려와 오디션 자리를 주선해주기 시작했다.

SM 건물이 있던 석촌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금동의 오금 고등학교에 춤으로 이름을 조금 날리는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안칠현이었는데 어렸을 적 친형이 추천해준 락 음악(건스 앤 로지즈, 메탈리카, 메가데스)을 통해 음악에 사랑에 빠졌고, 커가면서 블랙 뮤직인 힙합과 R&B에 빠지기 시작했다. 힙합과 함께 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안칠현은 주로 롯데월드 주변의 상가의 공터에서 친구들과 음악을 틀고 춤을 췄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계속해서 여러 오디션에 도전한 안칠현은 나이가 너무 어려 뽑히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매일 춤을 추던 곳에서 당시 임시로 SM의 길거리 디렉터로 여기저기를 누비던 김경욱의 눈에 띄어 명함을 받게 되었고, 몇 달 뒤에 오디션을 보러 가게 된다. 오디션 현장에는 이수만을 제외한 네명의 SM 직원들이 있었고, 안칠현은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1995)를 선보인다. 목소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직원들은 곧바로 이수만을 호출했고, 소년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이수만은 이 소년을 초창기 연습생으로 발탁하게 된다.

그렇게 계속해서 길거리 캐스팅을 하던 와중에, 문정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길거리 댄스팀 “해커”의 멤버인 문희준을 캐스팅하게 된다. 카페에서 기타 라이브를 하는 무명의 기타리스트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문희준은 어렸을 때부터 락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고, 십대가 되고 청소년이 되면서 듀스의 춤에 반해 춤을 추게 된 끼 많은 고등학생이었다. 문희준은 항상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녹색지대와 같은 락발라드 그룹과 댄스 가수 중 어느 쪽으로 지망해야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양쪽 전부에 흥미가 많았었다. 중산 고등학교에 수석입학을 했을 정도로 머리가 좋고, 성품도 바른 이 10대 소년은 오디션에서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1994)를 불렀고, 기량과 가능성 그리고 성품 모두가 마음에 들었던 이수만은 문희준을 연습생으로 발탁한다.

그 다음은 구미 출신의 장우혁이다. 장우혁은 중학교 때부터 여러 대외 활동에서 춤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누리단 경북지역 연합 캠프에서 학교 대표로 무대에 서서 춤을 춰서 학교내의 스타가 된 장우혁은 교내외 공연이 가능한 모든 행사에서 춤을 추면서 실력을 키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Y.O.U라는 댄스팀을 만든 장우혁은 정국 청소년 댄스 경연 대회에 출전하여 2년 연속으로 상을 타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장우혁은 서울의 롯데월드에서 열리는 댄스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당시 현장에 김경욱이 있었고, 김경욱이 장우혁에게 명함을 주면서 한 번 서울에 올라와서 오디션을 보라고 제의한다. 그렇게 1996년 초, 봄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다시 서울에 찾아온 장우혁과 친구들은 이수만 앞에서 오디션을 보게 된다. 장우혁의 춤실력과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이수만은 장우혁에게 곧장 계약을 제안하는데, 장우혁의 부모님이 반대하게 된다. 결국 장우혁의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이수만이 직접 구미에 내려가게 되었고, 장우혁의 부모님을 설득한 이수만은 1996년 3월, 장우혁과 계약을 하게 된다.

이수만이 현진영의 3집 앨범 작업을 하던 1993년, 메릴랜드 한인 대학 가요제에 참가하게 되면서 연을 맺었던 미국인 개리 분(Gary Boone)은 이수만과의 만남 이후 종종 이수만과 연락을 하고 지내기 시작했다. High-Five of Teenagers 프로젝트에 교포 멤버를 투입할 생각을 한 이수만은 프로젝트 시작 후, 이를 개리에게 알려 신문에 공고를 내게 되었고 이 오디션 공고를 통해 여러 소년들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앤써니라는 이름을 쓰는 한 소년이 자신에 가득찬 연락을 주게 되는데, 흥미가 생긴 개리는 이 소년과 3시간 가량 통화를 하고 데모 테이프를 보내고 그것이 마음에 들면 오디션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1996년, 늦은 밤의 LA 한인 타운에서 이수만은 앤써니와 앤디 그리고 다니엘(셋이 합쳐서 D.K boys)이라는 세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한인 노래방에서 그들의 노래 실력을 본 뒤, 야밤의 공원에서 그들의 춤을 본 이수만은 기대보다는 기량이 너무 떨어져서 실망하지만, 공원에서 춤을 추던 도중에 오디오 카세트의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30분간 배터리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소년들의 열정을 보고 조금의 기대를 갖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 오디션에서 이수만은 앤써니와 앤디에게 연습생 계약을 제시하게 되었고, 둘은 학기가 끝난 6월, 한국으로 날아가게 된다.

마지막에 발탁되는 소년은 석촌동에서는 조금은 먼 용인 출신의 이재원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춤에 빠져버린 이재원은 고등학교에 가서도 춤에 집중하기 위해서 집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진 강남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고등학교에서 만난 춤을 추는 선배들에게 춤을 배워가면서 전문 댄서를 목표로 춤 연습에 매진하던 이재원은 선배들에게 이끌려 석촌동의 SM 사무실에 찾아가 오디션을 보게 된다. 김경욱 앞에서 간단히 노래와 춤을 보여준 이재원과 선배들은, 조금 더 실력을 키우고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단념하게 되는데, 뜻밖에도 이틀 뒤에 이재원만이 연락을 받게 된다. 결국 이수만 앞에서 오디션을 보게 된 이재원은, 이수만에게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재원의 순수한 성격과 수려한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이수만은 이재원을 팀의 막내로 선점하고 연습생 제의를 하게 된다.

*SM에 연습생으로 합류한 순서는 위에서 언급한 순서가 맞을 가능성이 높지만 H.O.T.의 데뷔 멤버로 결정이 된 순서는 다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멤버들의 이후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문희준-이재원-장우혁-강타-토니 순으로 멤버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2. 연습생 그리고 최종 멤버 (1996년)

SM과 이수만은 위에 언급한 다섯 명의 연습생 외에도 여러 재능들에게 연습생 제안을 하기도 했고, 하나둘씩 연습생의 숫자를 늘려서 최종적으로는 열 다섯에 가까운 소년들이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습생 제안을 받았지만 합류하지 않았거나 집안 사정으로 인해 금새 떠난 소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리쌍의 개리,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 코요태의 김종민이 연습생 제안을 받고도 합류하지 않았고, 후에 신화로 데뷔하는 앤디는 앤써니와 함께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지만, 학업을 끝내라는 부모의 말에 준비 도중에 미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최종 멤버가 결정이 났고 그 멤버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다섯 명의 소년들이다.

최종 멤버가 확정되기 전부터 SM은 여러 방식을 통해서 연습생들을 훈련시켰다. 단체 합숙 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연습실에 모여서 어두워진 유리창을 거울삼아 춤을 연습해야 했고, 유영진과 함께 하드한 보컬 트레이닝과 랩 트레이닝을 받아야했다. 추가적으로 1995년도 말에 유영진이 2집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연습생으로 소속되어있던 아이들은 유영진의 뒤에서 백댄서 활동을 하면서 무대 경험을 키우기도 했다. 이러한 하드 트레이닝과 동시에 뛰어난 성품도 함께 보여줘야 했는데, 이는 연습생들이 현진영과 같은 길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SM의 특단의 조치였다. 결과적으로 사고를 치거나, 이런 혹독한 생활을 버티지 못한 연습생들은 하나 둘 SM을 떠났고, 결과적으로 이수만이 남은 멤버들 중 최종 멤버를 뽑게 된다.

여러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서 공개된 H.O.T. 멤버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연습생 시절 이야기는 일부분은 연습생 시절의 이야기가 맞지만, 대부분의 상세한 이야기는 데뷔조, 즉 최종 멤버에 선발되고 난 뒤의 이야기일 경우가 많다.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도 새벽에 음악이 울리면 일어나서 바로 음악에 맞는 춤을 춰야하는 훈련부터 시작해서 연습실에서 춤 동작을 확실하게 보기 위해 쫄바지를 입고 연습한 이야기, 너무 배가 고파서 멤버들이 동전을 탈탈 털어서 2,000원 어치 소세지를 구입해서 배를 채웠던 이야기 등, 최종 멤버인 다섯 소년들을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5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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