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0세대 아이돌 이야기 [KPOP HISTORY 100]

Pinluda 2024. 7. 29.
728x90
반응형

0세대 아이돌 이야기 [KPOP HISTORY 100]

아이돌 세대를 나눔에 있어서 0세대를 하나의 세대로 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아무래도 H.O.T.와 젝스키스가 포문을 열었던 아이돌 1세대가 아이돌 문화의 시초라고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이전은 아이돌의 한 세대라기보다는 아이돌이 탄생하기 전의 과도기라고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1세대가 탄생함에 있어서 0세대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아이돌 문화의 탄생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고, 그로 인해서 1세대 아이돌 이전의 모든 아이돌 계열 아티스트들을 0세대로 규정짓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0세대의 대표적인 아이돌은 누구?

우선, KPOP HISTORY 100에 꼽힌 여섯팀의 아티스트(김완선,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박진영, 김성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외에도 많은 팀들이 1세대 아이돌 문화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최초의 댄스 그룹 소방차부터 시작해서, 박남정이나 양준일과 같은 댄스가 가능한 솔로 가수들 그리고 일본의 마츠다 세이코와 비슷한 청순한 컨셉의 여자 아이돌 이지연과 강수지, 밴드 구성을 갖췄던 E.O.S와 노이즈 등, 여러 컨셉과 구성을 갖춘 팀들이 방송가를 휩쓸며 10대들을 상대로 엄청난 인기 몰이를 했다. 새롭게 음악 시장의 주 고객층이 된 10대들을 선점하기 위해서 10대들에 어필이 될만한 아티스트들을 다양하게 배출한 것인데, 결국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그룹과 현진영과 박진영을 필두로 한 솔로 아티스트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블랙 뮤직을 기반으로 댄스를 곁들인 아티스트였다는 것이다.

 

0세대 아이돌이 아이돌 문화에 끼친 영향

0세대 아이돌은 이후에 제대로 만개하게 되는 아이돌 문화의 뿌리와도 같은 세대였기 때문에 그들이 했던 모든 것들이 1세대 아이돌 문화 형성에 있어서 영향을 끼친 것이 맞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10가지를 꼽으라면 아래의 열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 언급한 10개의 요소들은 0세대 때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해서 그대로 1세대로 이어져서 1세대 아이돌 문화의 기틀이 되었던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다.

 


01. 댄스 음악과 전자 음악(미디 샘플링)의 탄생과 진화

(김완선, 홍종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1960년대에 트위스트가 유행하면서 노래에 춤을 곁들인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그러한 음악은 대부분 노래를 하지 않는 구간이나 간주 구간에 춤을 살짝 곁들인 수준으로 정말로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한다고 하기 어려운 음악들이었다. 그리고 이후 트위스트에서 디스코로 유행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율동을 곁들인 음악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런 음악에 전문적인 댄스 트레이닝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김완선이었다. 이후, 대한민국 락의 대부 신중현이 김완선의 2집 앨범, <김완선 2집>의 타이틀곡인 “리듬속에 그 춤을”을 만들어 선물하게 되는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즐기던 신중현이 대한민국 최초로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전자 음악을 만든 것이었다. 이후, SM 기획의 창립 프로듀서였던 홍종화는 아예 전자 음악 전문 프로듀서로 SM에서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이수만의 앨범과 현진영의 1집 앨범 <New Dance Vol. 1>을 제작하게 된다.

기존의 전자 음악이 컴퓨터와 신디사이저를 통해서 다양한 소리를 사용해서 새로운 느낌의 음악을 만드는 것에 가까웠다면, 1990년대 들어서 서태지와 듀스의 이현도는 이를 힙합식 미디 샘플링의 영역으로 끌고 오게 된다.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치는 락커였던 서태지는, 락 외에도 항상 새로운 음악에 관심이 있었고, 시나위 활동을 통해 번 돈으로 컴퓨터와 미디를 구입해 블랙 뮤직에서 많이 사용되는 샘플링을 사용한 음악 제작을 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통해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할 수 있었고,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하는 내내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제작하게 된다. 듀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블랙 뮤직에 애착을 갖고있던 만큼, 첫 작곡의 시작을 컴퓨터와 미디로 하게 되었고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정통 블랙 뮤직에 가까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새로운 방식의 작곡법은 1세대 아이돌은 물론, 90년대 가요계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들은 리믹스 버전을 이용해 활동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02. 연습생 시스템의 구축과 전문 기획사 설립

(희명 기획, SM 기획, 대성 기획)

1980년대 말까지 가수는 누군가가 키워주는 것이 아닌 타고나는 것에 가까웠다. 뛰어난 가창력을 갖고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하다가 누군가의 눈에 들어서 투자를 받고 가수 데뷔를 하는 것이 가수가 되는 유일한 방법에 가까웠기 때문에, 가수를 매니지먼트하는 전문적인 기획사가 있다기 보다는, 가수와 가수를 매니지먼트하는 매니저가 있는 방식이거나, 음반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음반사에서 가수와 계약을 맺어서 가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깨고 등장한 것이 바로 김완선이다. 70년대에 미군 부대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였던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는 당시 백댄서 중 하나였던 인순이의 노래 실력을 알게되고 희명 기획을 세워 인순이를 데뷔시키게 된다. 그렇게 인순이를 매니지먼트하는 동시에 자신의 조카였던 김완선의 끼를 알아보고 가수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인순이의 백댄서로 활동하던 스파크의 멤버들 밑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인순이의 백댄서로 활동하던 김완선은, 1986년에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최초의 아이돌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이었고, 후에 이수만이 한백희에게 트레이닝과 관련해서 많은 조언을 구하게 된다.

전문적인 기획사가 탄생하는 것은 김완선의 데뷔 후 얼마 뒤였는데, 1989년, 이수만이 오디션을 통해 현진영을 뽑게 되면서 차린 SM 기획이 최초의 전문 기획사 중 하나이다. 이수만은 김완선을 키운 한백희에게 들은 여러 조언과 자신이 계획한 것들을 버무려서 SM 기획의 트레이닝 시스템에 적용했고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현진영을 데뷔시키게 된다. 현진영을 데뷔 시킨 후로 한동안 걸출한 스타를 배출하지 못하게 되는 SM이었지만, SM은 이 때 쌓은 노하우를 통해 1세대부터 현재까지 아이돌 업계의 큰 기둥 중 하나로 거듭나게 된다. SM 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창립하면서 많은 아이돌 가수를 배출하게 되는 전문 기획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이호연이 세운 대성 기획(現 DSP 미디어)이다. 한밭 기획에서 소방차를 기획하고 데뷔시킨 이호연은, 댄스 음악의 전성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1991년에 대성 기획을 설립하게 된다. 1990년대 초, 대성 기획은 잼이나 코코, 뮤와 같은 여러 댄스 그룹을 배출하면서 소소하게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쌓인 경험을 토대로 1세대를 대표하는 그룹들인 젝스키스와 핑클을 제작하게 된다.

 


03. 전문 프로듀서의 탄생

(SM 기획,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지금이야 기획사마다 총괄 프로듀서나 전담 프로듀서가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아무나 대중 음악 작곡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한 프로듀서가 특정 회사에서만 프로듀싱을 하는 경우가 없었고, 한 프로듀서가 한 앨범의 프로듀싱을 전부 맡는 경우도 흔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 앨범 전체의 작곡과 녹음 그리고 편곡을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금액이 필요했고, 이러한 부분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조용필급의 탑 스타가 아닌 이상, 수지타산을 맞추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들어서 전자 음악이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전자 음악을 만들기 위한 예산과 소요 시간은 기존의 가요와 비교해서 한없이 가성비가 좋았다. 결과적으로 한 사람이 한 앨범, 혹은 한 회사의 노래를 전부 프로듀싱하거나 프로듀싱에 참여할 수 있는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SM 기획을 세운 이수만은, 기획사를 차리기 전부터 전자 음악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찾아다녔고, 결과적으로 홍종화를 SM 기획의 창립 멤버로 데려올 수 있었다. 현진영의 1집을 총괄 프로듀싱 했고, 이후에도 한동안 SM 기획의 메인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그가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나게 되면서 그 자리를 SM의 신인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유영진이 차지하게 되었고, 유영진은 H.O.T.부터 시작된 SM의 아이돌 산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리를 맡게 된다. 유영진은 그때부터 2023년까지 SM에 남아 SM을 상징하는 프로듀서로 활동을 하다가 이수만이 SM을 떠나면서 함께 떠나게 됐다.

따로 기획사를 설립하거나, 한 기획사에 남아서 프로듀싱을 전담하지는 않았지만, 서태지와 듀스의 이현도 역시 자신이 소속한 그룹의 프로듀싱을 활동 기간 내내 도맡아서 한 전문 프로듀서였다. 두 아티스트는 각각의 그룹의 대부분의 수록곡들을 직접 작곡 및 프로듀싱 했으며 이를 통해 앨범에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앨범의 컨셉에 맞도록 수록곡들의 서사를 만들 수 있었다.

 


04. 전문적인 안무, 포인트 안무

(박남정,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0세대 아이돌 중, 가장 초창기에 가까운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그리고 초기의 현진영은 댄스 음악을 했던 댄스 가수가 맞지만, 그들이 선보인 퍼포먼스는 노래 전곡에 맞춰서 짜여진 안무라기 보다는, 노래의 특정 부분(전주, 후렴 혹은 간주 등)에 포인트 안무를 넣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노래 전체에 맞춰서 안무를 하기 보다는, 전주에 맞춰서 어느정도 틀에 맞춰진 동작이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하이라이트 부분에 특별한 이름을 준 동작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남정의 경우, “널 그리며"(1988)에서 기역니은 춤을 선보였고, 현진영은 로저 래빗 스탭을 토끼 춤이라는 이름으로 들고 나와 자신의 1집 앨범 활동 내내 활용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의 안무를 준비해서 등장했다. 애초에 노래 자체가 춤을 출 수 있는 구간을 생각해서 만들었던 만큼, 전주와 간주에 퍼포먼스를 하는 구간이 길어졌고, 중간중간에 프리로 시대의 춤꾼이었던 이주노와 양현석이 프리스타일로 춤을 뽐낼 수 있었다. 그리고 1세대 아이돌이 보여주게 되는 노래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꽉 차있는 안무 구성을 처음으로 보여주게 되는 것이 바로 듀스였다. 듀스의 데뷔곡, “나를 돌아봐"(1993)은 전주부터 노래가 끝날 때 까지 정말 춤으로 가득 채운 퍼포먼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간 중간에 잠깐 씩 등장하는 이현도와 김성재의 프리스타일 구간을 제외한다면 모두 짜여져있는 안무를 보여줬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안무의 구성과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고, 현진영 역시 2집으로 복귀하면서 안무의 비중을 크게 늘려가기 시작했다.

 


05. 가수 전용 안무팀, 댄스팀 그리고 해외 댄스팀과의 협업

(김완선, 박남정,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듀스)

1980년대부터 스파크를 비롯한 전문 댄스팀이 탄생하기 시작했지만, 가수들과의 친분이나 의뢰를 통해 짧은 기간 함께 춤을 추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고, 간혹 아예 활동을 같이 하는 경우에는 따로 댄스팀을 섭외한다기 보다는 가수와 OOO과 비슷한 형태의 이름으로 함께 활동을 하는 형태(김승진과 하얀 손, 제갈민과 울랄라, 오복과 오복성, 현진영과 와와 등)가 많았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을 기점으로 세 멤버가 모두 노래를 하게 되면서 비슷한 형태의 그룹들은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고, 백댄서를 활용하게 되는 경우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댄스 가수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그들이 오르게 되는 무대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백댄서의 필요성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전문 댄스팀이 많지 않았던 시절인 만큼, 여러 가수들이 본인만의 댄스팀을 꾸리고 함께 연습하면서 해당 가수 혹은 기획사의 전용 댄스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이주노가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을 하면서 첫 콘서트를 위해 부활시킨 노피플과 양현석의 하이테크가 있고, 현진영과 2집과 3집을 함께한 와와가 있으며 듀스와 함께했던 메가와 포세(Posse)가 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로 인해 이때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는 댄스팀은 거의 없지만, 이때 시작되었던 댄스팀의 문화는 1세대 아이돌로 이어지게 된다.

추가적으로, 더 좋은 퍼포먼스를 위해 몇몇 가수들은 앨범 준비를 해외에서 하기 시작했고, 미국 현지의 댄서들과 함께 안무를 짜고, 한국으로 초빙까지 해서 함께 공연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현진영은 3집 앨범의 준비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해 현지 댄서들과 안무를 짜고, 뮤직비디오를 미국에서 촬영하고 의상을 미국 현지에서 구매하는 등, 더 깊은 흑인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해외에서 댄서들을 한국으로 초빙해 함께 3집의 첫 무대에 서기도 했고, 김성재 역시 솔로로 복귀하면서 첫 무대에 해외에서 직접 데려온 댄서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06. 활동 컨셉과 복장 코디네이션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듀스)

1990년대 초반 당시의 방송국에는 굉장히 까다로운 문화나 관례가 굉장히 많았고, 가수들의 복장에 대한 규정도 굉장히 빡빡했다. 때문에 일반인이 입을만한 옷을 입고 방송에 서기보다는 정장이나 예복에 가까운 복장으로 공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는 양현석이 친형에게 빌려온 돈으로 급히 의상을 장만해서 커다란 정장이나 웨이터 옷과 비슷한 디자인의 옷으로 무대에 서고는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가 단 며칠 사이에 전국구로 치솓게 되면서 많은 것이 변하게 되는데, 상당히 오픈 마인드를 지녔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출연하기로 했던 한 방송의 PD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촌스러운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였던 최진열에게 얼른 새 옷으로 바꿔 입으라고 했고,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은 최진열이 남대문 시장에서 급히 아무 가게에서 빌려온 옷으로 갈아입고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스트릿 패션을 입기 시작했다. 추가적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럽의 패션학교에 재학중이었던 여학생을 코디네이터로 고용하게 되었고 그들이 보여준 스트릿 패션은 10대들에게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내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복장 규제에 걸린 자물쇠를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풀게되면서 이후에 활동하게 되는 가수들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92년도 말에 2집 앨범과 함께 컴백한 현진영 역시 후드티와 X세대를 상징하는 X 무늬가 새겨진 티셔츠, 그리고 한껏 내려입은 청바지와 함께 컴백한 것이다. 그 이후로 데뷔한 듀스는 더욱 더 발전된 코디를 보여주게 되는데, 패션에 대한 감각이 워낙 뛰어났던 김성재가 앨범의 컨셉과 앨범 활동의 방향을 잡으면서 직접 복장 코티네이트는 물론, 복장 디자인까지 겸하게 되면서 점프슈트 세트 정장과도 같은 무대 전용 의상들을 선보인 것이다.

 


07. 뮤직 비디오 제작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대중 음악 산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1981년 MTV의 개국과 함께 뮤직 비디오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1980년대 중반에 가수가 직접 제작을 하는 것이 아닌, 방송국에서 제작을 해줘서 방영을 해주는 '영상 음악'이라는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조금은 맥락이 다르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가수나 회사차원에서 직접 뮤직 비디오를 만든 것은 아마도 이수만이 귀국하여 1985년에 부른 “돌아와"가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뮤직 비디오를 활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한국에서 뮤직 비디오를 볼 수 없었고 이후, 현진영이 데뷔했을 때도 뮤직비디오를 활용하지 않았다. 물론, 방송국에서 방송용으로 제작해줘서 틀어주는 뮤직비디오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가수들이 직접 기획을 해서 만드는 형태의 뮤직비디오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면서 뮤직 비디오의 파급력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데뷔곡인 “난 알아요” 그리고 후속곡인 “환상 속의 그대"의 뮤직 비디오가 엄청난 히트를 하게 된 것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 비디오는 기존의 '영상 음악'이나 이수만의 “돌아와” 그리고 방송에서 제작해주던 뮤직비디오와는 전혀 다른 미디어였다. 이미 뮤직 비디오 시장이 많이 발전했던 미국의 가수들이 만드는 형식을 쫓아간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 비디오는, 단순히 음악에 맞춰서 립싱크를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음악에 맞춰서 움직이거나 안무의 포인트에 맞춰서 화면히 전환되기도 하고, 중간 중간 스토리 라인이  들어가면서 뮤직 비디오를 통해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준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뮤직 비디오로 성공하는 것을 본 다른 그룹들 역시 뮤직 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고, 듀스는 모든 앨범에서, 현진영 역시 3집 앨범을 위해 미국에서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는 등 뮤직 비디오를 기본적인 마케팅 툴로 이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Mnet이나 KMtv 같은 뮤직 비디오 전용 케이블 방송국들이 생겨났고 이는 1세대 아이돌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늘려준 것이다.

 


08. 팬클럽 문화와 굿즈 시스템의 확립

(서태지와 아이들)

가수의 팬이 되어서 가수의 앨범을 모으고, 가수를 쫓아 다니는 형태의 팬클럽은 꽤 오랜기간 존재해왔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을 때, 처음으로 10대 청소년들이 대중 음악의 청중의 메인으로 치고 올라오면서 기존보다 더 조직화 된 팬클럽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3년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식 팬클럽인 아이비(IVY)를 창단하고 공식 회원을 모집하게 된다. 1993년 1월에 1기, 그리고 같은 해 6월에 2기 회원을 모집한 아이비를 위해 서태지와 아이들은 각 지방을 돌며 창단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 팬클럽으로 인해 공식 팬클럽 소속의 팬들과 일반 팬들이 파벌을 나누는 문제와, 팬클럽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1995년에 팬클럽을 해산시키게 된다.

팬클럽과 별개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가 10대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불법으로 생산되는 굿즈들이 엄청나게 성행하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초기에는 유대영의 영 기획이 서태지를 매니지먼트 했기 때문에 굿즈에 걸린 저작권이나 초상권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가져갈 수 없었고, 영 기획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1집 굿즈에 대한 권리를 모두 영 기획에 넘기게 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서태지는, 2집 준비 과정에서 요요 기획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요요 기획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굿즈와 관련된 법적 문제를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모든 불법 굿즈를 근절할 수는 없었지만 온당하게 아티스트와 기획사에게 굿즈에 대한 수입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먼 발치서 모두 바라본 이수만은 이후, H.O.T.를 제작하면서 팬클럽과 굿즈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서태지가 밟아온 과정을 많이 참고했고, 더 많은 살점을 붙여서 팬클럽 문화를 정착 시키게 된다.

 

 


09. 테마송 (팬송, 시즌송)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아이돌들이 자신의 팬들을 위해 제작하고 부르는 팬송 문화 역시 0세대의 산물이다. 팬송의 시작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인데, 2집 앨범인 <SeoTaiji and Boys 2>에 수록된 “우리들만의 추억"“너에게"가 역대 아이돌 역사에서 처음 나온 팬송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우리들만의 추억"“너에게"는 단순히 팬송의 초창기 모습 혹은 현재의 팬송으로 발전하기 전의 프로토 타입의 형태의 노래가 아닌, 완전하게 현재의 팬송에 부합하는 형태의 팬송이다. 심지어 고별 앨범인 4집, <SeoTaiji and Boys 4>에서는 최초의 고별 팬송인 “Good Bye”를 수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팬송 문화는 바로 다음 세대의 선두 주자인 H.O.T.에게 그대로 연결이 된다.

팬송을 만든 서태지와는 별개로, 듀스는 최초의 여름 시즌송인 “여름 안에서"를 만들었다. 경포대에서 음악 방송을 하러 가게 된 듀스는 이동 중에 잠을 자다가 바닷가에 도착하고 눈을 뜨게 되는데, 눈 앞에서 바닷가를 본 이현도는 금새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있어"라는 가사와 멜로디를 떠올리게 되고, 그 날 새벽 3시경, 여의도의 작업실에서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로 바닷가에서 촬영된 뮤직 비디오와 어우러진 여름이 느껴지는 곡은 현재까지도 여름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이다. 듀스가 시작한 시즌송은 이후 여러 가수들을 통해 이어지게 되었고, 시즌송을 위주로 활동하는 그룹들 역시 함께 탄생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10. 활동 휴식기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가요계에 다음 음반 작업을 위한 휴식기라는 개념이 없었다. 모든 가수는 방송국에서의 요청이 있는 한 계속해서 활동을 해야했고, 다음 앨범을 위한 준비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짬짬이 음반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조용필 정도 되는 탑 스타라면 음반 활동을 위해서 한동안 방송계를 떠나있을 수 있었겠지만, 어느 가수가 공식적으로 현재 앨범 활동에 대해 끝을 선언하고 휴식기에 들어가는 형태의 휴식기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활동 휴식기를 만든 것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기적인 휴식기가 의도적으로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집 활동에 한참 바쁘던 와중에 여러 방송 출연과 행사 그리고 콘서트 일정이 엄청나게 빡빡하게 겹치기 시작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의 기획사였던 영 기획과 담판을 짓게 되었고, 영 기획을 떠나기로 합의를 보면서 콘서트에 집중하기위해 약속돼 있었던 몇몇 방송 출연과 행사를 취소하고 콘서트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콘서트를 마친 뒤에, 다음 앨범을 위해서 약 한 달간의 앨범 준비 기간 겸 휴식기를 갖기로 선언하고 방송가에서 사라지게 된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생기게 된 이 활동 휴식기라는 개념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단순히 재정비할 시간과 음반 작업을 할 시간을 제공해준 것 뿐만이 아니라, 그룹의 신비감을 더해주는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를 할 때까지 활동기와 휴식기를 나눠서 활동을 하게 되었고, 뒤이어 데뷔한 많은 그룹들이 같은 방식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형태의 활동 방식은 오랫동안 대부분의 아이돌 가수들이 활동하는 방식으로 굳어지게 된다(이후, 인터넷을 통한 여러 플랫폼을 통한 활동이 가능해지면서, 완전한 휴식기를 갖는 아티스트들이 줄어들게 된다).

 


0세대 아이돌을 주도하고, 1세대까지 이어진 기획사

 

01. SM 기획 (現 SM 엔터테인먼트)

최초로 설립된 전문 기획사이자, 현진영을 배출하고, 전문 프로듀서인 홍종화와 유영진을 필두로 많은 아티스트들을 내놓은 SM은, 말 그대로 0세대에서도 큰 역할을 하다가 1세대에 들어 마침내 그 빛을 보게 된 기획사이다. 특히 0세대를 몸소 경험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10가지 요소중 절반 이상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고, 경험하지 못한 나머지 절반의 요소에 대해서도 습득하고 발전시켜 1세대 아이돌에게 적용시켜 한국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여럿 배출하게 된다.

02. 대성 기획 (現 DSP 미디어)

한밭 기획에서 소방차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이호연이 설립한 기획사로, 후에 SM의 라이벌이라고 불리울 많은 그룹들을 배출하게되는 기획사이다. 비록 0세대에 엄청나게 성공한 아이돌 아티스트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혼성그룹을 제작하면서 조금씩 노하우를 쌓았고, 나름대로 발빠르게 새로운 아이돌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1세대의 포문을 열게되는 아이돌을 배출하기도 한다.

03. GM 기획 (現 포켓돌 스튜디오)

김완선의 로드매니저를 하던 김광수가 세운 기획사로, 오디션을 보러 온 듀스를 퇴짜 놓으면서 큰 기회를 놓치기는 했지만, 여러 연습생들을 모으면서 꾸준하게 준비를 했고 결국에는 윤상, 터보 등 여러 0세대 아이돌을 배출한다. 김광수는 이후에도 여러번 회사 이름을 바꿔가며 여러 세대에 걸쳐서 아이돌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0세대 아이돌이 의미하는 것

기본적으로 0세대 아이돌은 진정한 아이돌 역사의 시작인 1세대로 가는 문화적인 기틀을 만들어준 세대이다. 다만, 아이돌이라는 용어도 아직 사용되기 전이었고, 다양한 형태의 아티스트들이 나오면서 그 모든 요소들이 아이돌 문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던 만큼, 0세대에 해당하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아이돌로 평가 받을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돌 문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문화는 그대로 사장되지 않고, 한국 음악계의 르네상스라는 1990년대 중반의 한국 음악의 전성기를 만들어준 기틀이 되어줬음에는 분명하다. 음악을 듣는 방법이 워크맨과 마이마이의 등장으로 다양하고 간편해지면서 음악을 소비하는 주 소비자층의 경계가 넓어졌고,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여러 가수들이 등장하여 아이돌 문화 외에도 힙합이나 R&B 그리고 클럽 문화까지 저변을 넓힐 수 있었다는 것이 아이돌 0세대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0세대 아이돌 리스트

No. YEAR GEN S NAME DEBUT LABEL MEMBER
0001 1986 0.0세대 S 김완선 (Kim Wan-Sun) 86.01.05 희명 기획 여성 솔로
0002 1987 0.0세대 - 소방차 (SOBANGCHA) 87.04.20 한밭 기획 남성 3인조
0003 1987 0.0세대 S 이지연 (Lee Ji Yeon) 87.10.30 백두산 여성 솔로
0004 1988 0.0세대 S 박남정 (Park Nam Jeong) 88.02.01 태광 음반 남성 솔로
0005 1989 0.0세대 - 혜성 (Comet) 89.01.01 스파크 여성 4인조
0006 1990 0.0세대 S 강수지 (Kang Soo Jee) 90.04.01 (윤상 프로듀싱) 여성 솔로
0007 1990 0.0세대 - 야차 (Yacha) 90.04.25 백두산 남성 5인조
0008 1990 0.0세대 S 현진영 (Hyun Jin Young) 90.06.19 SM 기획 남성 솔로
0009 1990 0.0세대 S 양준일 (John Yang) 90.11.30 U.N.I 남성 솔로
0010 1992 0.0세대 - 제갈민과 울랄라
(Jegal Min & Oolala)
92.01.01 원 기획 남성 3인조
0011 1992 0.0세대 S 손지창 (Son Ji Chang) 92.02.01 예음 남성 솔로
0012 1992 0.0세대 - 잼 (Zam) 92.02.21 대성 기획 혼성 5인조
0013 1992 0.0세대 - 서태지와 아이들 (Taiji Boys) 92.03.14 영 기획 남성 3인조
0014 1992 0.0세대 S 김민종 (Kim Min Jong) 92.04.01 서울 음반 남성 솔로
0015 1992 0.0세대 S 하수빈 (Ha Soobin) 92.06.01 수도 미디어 여성 솔로
0016 1992 0.0세대 - 철이와 미애 (Chuli & Miae 92.09.25 C.M.R.P. 혼성 듀오
0017 1992 0.0세대 S 김원준 (Kim Won Jun) 92.10.20 제일 기획 남성 솔로
0018 1992 0.0세대 - 노이즈 (Noise) 92.11.01 라인 음향 남성 4인조
0019 1992 0.0세대 P 더 블루 (The Blue) 92.12.01 서울 음반 남성 듀오
0020 1993 0.0세대 S 엄정화 (Uhm Junghwa) 93.03.13 삼성 뮤직 여성 솔로
0021 1993 0.0세대 - 코코 (Coco) 93.04.01 대성 기획 여성 듀오
0022 1993 0.0세대 - 듀스 (DEUX) 93.05.09 뮤즈 기획
예당 음향
남성 듀오
0023 1993 0.0세대 - 이오스 (E.O.S) 93.06.01 E.O.S 사운드 프로덕션 남성 3인조
0024 1993 0.0세대 - 디보이스 (D-Boys) 93.06.01 아세아 레코드 남성 듀오
0025 1993 0.0세대 - 비트 (Beat) 93.06.01 킹 레코드 남성 3인조
0026 1993 0.0세대 - 잉크 (Ink) 93.07.01 공룡 기획 남성 7인조
0027 1993 0.0세대 - 천칠백팔십 (1730) 93.07.01 - 혼성 3인조
0028 1993 0.0세대 - 애플 (Apple) 93.07.17 반도 음반 여성 3인조
0029 1993 0.0세대 S 유영진 (Yoo Young Jin) 93.08.01 SM 기획 남성 솔로
0030 1993 0.0세대 - 탁2준2 (Tak 2 Joon 2) 93.08.01 한국 음반 남성 듀오
0031 1993 0.0세대 - 칼라 (Color) 93.08.04 은성 기획 여성 4인조
0032 1993 0.0세대 - 에스오에스 (S.O.S) 93.09.01 심포니 레코드 여성 4인조
0033 1993 0.0세대 - 모노 (Mono) 93.10.25 애플 레코드 남성 3인조
0034 1993 0.0세대 - 솔리드 (Solid) 93.12.15 해외 / 서인 기획 남성 3인조
0035 1994 0.0세대 - 크림 (Cream) 94.04.01 아세아 레코드 여성 3인조
0036 1994 0.0세대 - 에다호 (Edaho) 94.01.01 아세아 레코드 혼성 4인조
0037 1994 0.0세대 - 좌회전 (Turn Left) 94.04.01 지구 레코드 남성 3인조
0038 1994 0.0세대 - 투투 (Two Two) 94.05.01 휘트니스 혼성 4인조
0039 1994 0.0세대 - 룰라 (Roo'Ra) 94.05.04 월드 뮤직 혼성 4인조
0040 1994 0.0세대 - 제이앤제이 (J&J) 94.07.01 SM 기획 남성 듀오
0041 1994 0.0세대 - 뮤 (Mue) 94.07.01 대성 기획 혼성 6인조
0042 1994 0.0세대 - 쿨 (Ku:l / Cool) 94.07.14 IP 프로덕션 혼성 4인조
0043 1994 0.0세대 S 구본승 (Gu Bon Seung) 94.07.22 스톤 엔터테인먼트 남성 솔로
0044 1994 0.0세대 - 몰리 (Molly) 94.08.01 지구 레코드 여성 듀오
0045 1994 0.0세대 - 피아노 (Piano) 94.10.01 동아 기획 혼성 3인조
0046 1994 0.0세대 - 제트 (Z) 94.10.01 미지움 레코드 남성 3인조
0047 1994 0.0세대 R 박진영
(Park Jin Young / JYP)
94.10.22 OK 뮤직 남성 솔로
0048 1994 0.0세대 S 서지원 (Seo Jiwon) 94.12.04 옴니 뮤직 남성 솔로
0049 1995 0.0세대 - 안전벨트 (Safety Belt) 95.01.01 아세아 레코드 남성 4인조
0050 1995 0.0세대 - 팝콘 (Popcorn) 95.02.01 월드 뮤직 혼성 듀오
0051 1995 0.0세대 - 알이에프 (R.ef) 95.03.19 팀 기획 남성 3인조
0052 1995 0.0세대 - 월드 (World) 95.04.01 미지음 레코드 혼성 5인조
0053 1995 0.0세대 - 붐 (Boom) 95.05.01 예당 음향 혼성 4인조
0054 1995 0.0세대 - 팜팜 (Pam Pam) 95.05.01 휘트니스 혼성 3인조
0055 1995 0.0세대 - 쎄쎄쎄 (Se Se Se) 95.05.01 희 레코드 여성 3인조
0056 1995 0.0세대 - 터보 (Turbo) 95.07.01 GM 기획 남성 듀오
0057 1995 0.0세대 - 이엔오 (E.NO) 95.10.01 - 혼성 3인조
0058 1995 0.0세대 - 후 (Who?) 95.10.01 ST 프로모션 혼성 3인조
0059 1995 0.0세대 I 김성재 (Kim Sung Jae) 95.11.19 뮤즈 기획 / 예당 음향 남성 솔로
0060 1995 0.0세대 - 윌 (WILL) 95.12.01 아세아 레코드 혼성 4인조
0061 1995 0.0세대 - 펌프 (PUMP) 95.12.01 나이시스 혼성 4인조
0062 1995 0.0세대 - 허니 (Honey) 95.12.01 - 혼성 3인조
0063 1996 0.0세대 - 쿰바 (Koomba) 96.01.15 화이트 뮤직 남성 듀오
0064 1996 0.0세대 S 린다 (LINDA) 96.02.01 아세아 네트워크 여성 솔로
0065 1996 0.0세대 - 덩크 (Dunk) 96.02.01 소리 마당 남성 4인조
0066 1996 0.0세대 - 큐브 (Cube) 96.02.09 - 혼성 5인조
0067 1996 0.0세대 - 차차 (Cha Cha) 96.04.01 - 혼성 4인조
0068 1996 0.0세대 - 유피 (UP) 96.05.01 현대 음향 혼성 3인조
0069 1996 0.0세대 - 에코 (ECO) 96.05.01 Music Design 여성 3인조
0070 1996 0.0세대 - 엠아이케이 (M.I.K) 96.05.01 대우 기획 혼성 4인조
0071 1996 0.0세대 - 에프머쉰 (F-Machine) 96.05.01 도레미 레코드 혼성 3인조
0072 1996 0.0세대 - 트리플 (Triple) 96.05.01 지구 레코드 혼성 3인조
0073 1996 0.0세대 - 클론 (CLON) 96.05.01 라인 음향 남성 듀오
0074 1996 0.0세대 - 보이 (VOY) 96.06.01 문화 뮤직콤 혼성 3인조
0075 1996 0.0세대 - 비비 (B.B) 96.07.03 ART LAB 여성 듀오
0076 1996 0.0세대 - 콜라 (Kola) 96.08.01 라인 음향 혼성 3인조
0077 1996 0.0세대 - 마운틴 (Mountain) 96.09.01 대성 기획 혼성 듀오
0078 1996 0.0세대 - 콤마 (Comma) 96.09.01 삼구 커뮤니케이션즈 혼성 4인조
0079 1996 0.0세대 I 이현도 (D.O) 96.09.21 예당 음향 남성 솔로
0080 1996 0.0세대 - 퍼포머 (Performer) 96.10.01 m-people 혼성 3인조
0081 1996 0.0세대 - 자자 (Zaza) 96.10.28 월드 뮤직 혼성 4인조
0082 1996 0.0세대 - 샤키 (SSAIKI) 96.11.01 세음 미디어 혼성 듀오

 


 

최종 편집일: 2024년 08월 25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