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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3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결성 비화 [KPOP STORY]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결성 비화 [KPOP STORY]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그룹 중 하나인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의 결성 비화는 시대가 흐르면서 조금씩 내용이 바뀌어왔다. 워낙에 신비주의를 고수하기도 했고, 베일에 가려진 내용이 많은 서태지와 아이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내용들이 잊혀지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들이 주목 받으면서 이야기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여러 기록물들을 통해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변화했고 어느 이야기가 사실에 가장 가까운지 비교해보면서 이 글을 작성해보려 한다.01. 큰 틀에서 보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결성 이야기서태지와 아이들의 결성 비화 관련해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서태지가 데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스포츠 서울에 몇주간 투고했던.. MusicDOC/KPOP STORY 2024. 8. 5.
1979년, 한국 댄스의 출발점 UCDC와 스파크 [KPOP STORY] 1979년, 한국 댄스의 출발점 UCDC와 스파크 [KPOP STORY]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 댄스 가수의 등장은 1979년보다 한참이나 빠르다. 60년대, 트위스트의 시대에 등장한 트위스트 김이나 디스코 시대의 이은하 등 여러 가수들이 있었지만 전문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은 U.C.D.C의 등장과 함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여러 자료들과 서적들을 통해 대한민국 댄스의 역사를 역대 그 어떤 자료보다도 상세하게 정리하고 기술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이다.01. 한국 최초의 댄스팀 U.C.D.C의 탄생 (1979년)U.C.D.C(United College Dancing Club)70년대 말, 서울의 춤꾼들은 다 같이 팽고팽고 나이트에서 모여서 춤을 추는 것을 즐겼.. MusicDOC/KPOP STORY 2024. 7. 28.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KPOP HISTORY 100] No.003 No.003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KPOP HISTORY 100 세번째 아티스트는 대한민국 역대 유일의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우리나라 음악 역사에서 가장 임팩트가 컸던 가수를 뽑으라고 한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장 먼저 뽑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뷔와 동시에 전국적인 파란을 불러온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들의 음악과 춤으로 대중을, 특히 기존에 음악에 대한 소비층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10대들을 사로잡은 것에서 시작해 여러가지 제도와 규제를 타파하는 말 그대로 일개 뮤지션을 넘어선 파급력을 보여줬다. 서태지와 아이들에 속한 세명의 멤버는 공식 해체 이후에도 연예계에 굵직한 행보를 이어나갔고, 말 그대로 현대 KPOP에 굵고 긴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KPOP HISTORY 100] No.. MusicDOC/KPOP HISTORY 100 202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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