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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 5화: H.O.T. 데뷔

Pinluda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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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 5화: H.O.T. 데뷔

High-Five of Teenagers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수만은 여러 재능들을 모을 수 있었고, 그 재능들을 자신이 지니고 있던 여러 자원을 통해 키워낼 수 있었다. 그렇게 약 2년간의 시간동안 공들여 만들어진 그룹 H.O.T.는 많은 노력과 기대속에서 탄생했다. 이수만의 모든 노하우를 쏟아부어 만들어진만큼, 적어도 망하지는 않고 중박 이상은 칠거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무조건 대성공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H.O.T.은 각종 음악 방송에서 1위로 시작해서, 결국 1996년 최고의 신인으로 1집 앨범 활동을 마칠 수 있었다. 이는 아이돌 가수를 만드는 회사라는 시스템 자체가 성공적이라는 예시가 되었고, SM은 후속 그룹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13. 데뷔를 위한 최종 준비 (1995 ~ 1996년)

신인 그룹 H.O.T.의 다섯 명의 멤버도 결정이 나고, 앨범의 방향도 정해진 다음에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소년들은 유영진의 지도 아래서 보컬 트레이닝과 녹음을 진행하고, 유명한 댄서였던 SM의 안무가 박재준과 멤버들이 함께 안무를 짜서 연습을 하면서 데뷔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멤버들의 연습 방식은 다양했는데, 기본적으로 회사 건물의 비어있는 1층에서 쫄바지를 입고(동작의 정확도를 보기 위해) 쇼윈도를 거울 삼아 춤연습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숙소에서 자다가도 한 밤중에 음악이 나오면 바로 일어나서 파트에 맞게 춤을 추는 연습을 하는 등, 어느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극한의 상황을 가장한 연습 등, 기존에는 없었던 방식의 연습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원래 데뷔곡으로 선택했던 곡은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 였기 때문에 해당곡에 대한 안무로 데뷔를 준비했었는데, 이수만과 주변인들이 “Candy”를 선호했기 때문에 타이틀곡이 “Candy”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 폭력에 대항하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 앨범을 만들었던 만큼 멤버들은 밝고 귀여운 “Candy”보다는 전사같은 느낌을 주는 “전사의 후예”를 선호했고, 잘리는 것을 각오하고 이수만을 설득한 끝에 “전사의 후예"로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데뷔를 준비하던 도중, 안칠현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수만은 적당한 예명 후보를 골라오라는 임무를 주게 된다. 여러 폼나는 이름을 고민하던 찰나에, 만화 주인공들의 이름은 어떨까 생각을 했고, 그렇게 가져간 예명 후보 중 하나가 최강타였다고 한다. 강타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이수만은 성을 뺀 강타라는 예명을 안칠현에게 제안하게 되고, 그렇게 안칠현은 강타라는 예명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앤써니의 예명에 대해서 고민하던 이수만은, 멤버들과 함께 피자를 먹다가 피클이라는 예명을 앤써니에게 제안하게 되는데,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예명에 기겁한 앤써니는 차라리 이름을 줄여서 토니로 하자고 제안하게 되었고, 그렇게 앤써니의 예명은 토니가 된다.

 


14. 10대들의 우상 H.O.T.의 화려한 등장 (1996년)

이수만은 H.O.T.가 방송에서 데뷔하기 전에 무대 경험을 해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 여러 방안을 고민하게 되는데, 우선적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학교 축제였다. 팀의 리더인 문희준이 다니던 중산고는 신설학교였는데, H.O.T.가 데뷔 준비를 어느정도 마쳤을 시점에 중산고에서 제 1회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이었다. 연습생이 되기 전부터 수석 입학을 하거나 댄스 공연을 하면서 이미 인기가 많았던 문희준이 리더로 있는 신생 그룹이 학교 축제에 참여하겠다고 하자 학교 측에서는 찬성하게 되었고, 그렇게 H.O.T.의 첫 무대가 1996년 8월, 중산고 축제에서 펼쳐졌다.

중산고 축제 직후, 이수만은 H.O.T.가 TV 방송에 데뷔하기 전에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알고 지내던 잡지사의 발행인이었던 신성철에게 부탁하여 1996년 《삐삐 012 콘서트》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H.O.T.는 1996년 8월 18일부터 9월 8일까지 총 5회(서울, 대구, 광주, 부산, 대전)의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삐삐 콘서트 이전에 대명 스키 리조트에서 했던 공연이 공식적인 첫 무대였다고 한다.

그렇게 몇번의 공연을 통해 실질적인 데뷔를 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이수만은 1996년 9월 7일, MBC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통해서 H.O.T.를 데뷔시킨다. H, O, T라고 나눠서 부르는 것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것인지, 진행자인 김혜수가 팀 이름을 핫이라고 소개를 했고, 문희준 역시 소개를 할 때 팀 이름을 핫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이 방송을 통해서 H.O.T.는 첫 무대는 물론, 멤버들의 자기소개와 장기자랑을 보여주는 등, 대중에게 제대로 자신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십대들의 우상, 십대들의 승리가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이었다.

 


15. 신인 전사의 후예에서 대박 캔디로 (1996 ~ 1997년)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이었던 “난 알아요"정도의 큰 반응을 이끌지는 못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가면서 매주 조금씩 순위를 올려가며 음악 방송 1위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렇게 11월 말에는 SBS 《TV 가요 20에》서 3위에 오르게 되었고 조만간 1위 후보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PC통신을 중심으로 H.O.T.의 “전사의 후예”가 Cypress Hill의 “I ain’t Going Out Like That”이라는 곡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표절 시비가 제기되면서 음악 방송 순위에서 강제적으로 사라지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결국, SM과 이수만은 회의를 통해 최대한 빨리 후속곡 활동을 시작해서 논란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H.O.T.는 데뷔곡 “전사의 후예”의 갱스터 힙합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신나고 귀여운 분위기의 댄스곡인 “Candy”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여태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귀여운 컨셉의 댄스곡은 여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한 단계씩 오르던 H.O.T.의 인기와 인지도는 순식간에 정상을 찍게 된다. 1996년 말, 신나라 레코드의 음반 판매 집계에서 신승훈마저 제치고 1위를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12월 중순부터 방송 3사의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H.O.T.의 “Candy”는 KBS에서 2주 연속, MBC에서 3주 연속 그리고 SBS에서는 5주연속 1위(왕중왕)를 기록했고, 연말에는 여러 방송사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심지어 H.O.T.의 1집 앨범은 1996년에 103만장, 이듬해 102만장, 총 205만장이 팔리면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드디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빈자리를 채워줄 대형 그룹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5화에서 계속됩니다.

 


 

 

최종 편집일: 2024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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